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권-위구르 관계 (문단 편집) === 문화적 차이 === 신장 지역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인도, 페르시아, 이슬람, 티벳, 투르크 문화의 영향 역시 골고루 받은 지역으로 중화 문화보다는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권에 훨씬 더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위구르어]]가 중국어의 방언이라는 역사 왜곡을 대놓고 주입시키니 세속주의적인 위구르인들도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현대 중국의 다수민족인 한족이 위구르인들을 보는 관점에는 이런저런 [[옥시덴탈리즘]]과 [[오리엔탈리즘]]이 뒤섞여있다. 중국의 식민지 주민이 된 위구르인들에게 이런저런 스테레오타입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1978년 이후에는 위구르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이 완화되었지만[* 1978년 이전에는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중화민족의 단일화 정책에 따라 한족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거나 통혼 혼혈을 장려하였으며,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나 술을 먹는 것을 강요받기도 하였다. 한 편 후술할 [[신장 재교육 캠프]]가 들어서면서 강압적인 동화 정책이 과거로 회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구르인들은 중국 미디어 내에서 관능적이고 이국적인 모습의 "[[오랑캐]]"로서 묘사되기 시작했다. 한족 시각에서 위구르인들은 "이국적인 옷을 입고 웃으면서 노래부르고 춤추는 사람들"이라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정형화된 이미지 외에도 극단주의 성향으로 중국인들에게 테러 위협을 가하고 마약 밀매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는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까지 따라붙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중국 내에서 위구르인들의 입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회적 입지 즉 "열등하고 범죄적이며 이국적인 집단"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위구르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살고 있는데, 뜬금없이 다수자 집단이 그들보고 "이국적인 소수민족"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반가워할 이유가 없다.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이슬람권과 러시아에서는 중국을 키타이 혹은 카타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원래 [[요나라]]를 건국한 키탄([[거란족]])들을 지칭하던 명칭이다. 중세 위구르 상인들은 요나라의 수도 연경을 오고가며 교역하였던 바 있다. 위구르어로도 중국인을 까따이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중국 정부에서는 한족이나 중국을 함부로 까따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검열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위구르인들을 식민지배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한족과 동화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청나라 때 만주족들의 입지가 점점 약화되면서 19세기 말 한족들이 이 지역에 [[서당]]을 설치해서 위구르인 학생들을 반강제로 서당에서 한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일방적인 한화 정책이 위구르인들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결국 이러한 실패로 끝났고 나중에는 실용성 논란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러시아나 터키에서 온 같은 투르크-무슬림 계열인 [[타타르인]]들이나 [[터키인]]들이 동투르키스탄 지역에 새로 새운 서구식 신식 학교들이 위구르인 사회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바 있다. > 한족은 우루무치를 비롯한 신장 북부와 동북부의 도시들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고소득 전문 직종과 정부 공무원으로 일한다. 신장의 위구르인들은 외국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이 대규모 프로젝트, 특히 에너지 분야의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직업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구르인들은 또한 공통적으로 자신들은 신장 남부의 도시들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건설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없다고 불평했다. 이드 카 모스크 주변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과 구 [[카슈가르]]의 위구르 구역에서 도로를 포장하는 사람들, [[호탄]]의 구 [[바자르]]를 철거하고 중심 번화가의 주요 개보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두 한족이었으며, 이들은 멀리 떨어진 타슈쿠르간에도 있었다. 더욱이 내가 대화를 나누어 본 노동자들은 신장 동쪽에 있는 성들에서 왔다고 말했다. 신장 당 제1서기이자 정치국의 일원이었던 왕러취안은 외국 언론인들에게 "신장의 많은 소수 민족들이 '더럽고 힘들며 고된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해명을 했다. 쓰촨 출신의 한 노동자가 서방의 기자에게 한 논평은 좀 더 미묘한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 > ||"우리는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모릅니다."라고 쓰촨 성 출신의 건설 노동자 장비종이 말했다. "우리 쓰촨 사람들은 쌀밥과 돼지고기 그리고 강한 향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요. 현지의 소수 민족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쌀밥도 먹지 않아요." || > > 정작 대다수의 위구르인들은 쌀밥을 좋아하고, 이들이 먹는 쌀밥인 플롭에는 여러가지 향신료가 들어간다. 인터뷰를 한 노동자 장비종씨가 위구르인들이 쌀밥을 즐겨먹는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면, 아마도 그를 고용한 노조 간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일대일로|여러 곳에서 진행되는 개발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 > 유라시아의 교차로 신장의 역사 / James A. Millward 중국인들 역시 과거 [[장제스]]가 주장한 "위구르인들은 중국인의 일부"[* 장제스는 중국 고대 신화와 근대 민족주의를 자기 멋대로 결합시켜서 "위구르족이 본래 중국 민족의 지파 즉 황제의 후손이었으나 지리와 역사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분기되었을 뿐"이라는 오늘날 상식 기준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피력하였다.]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생각하는지 위구르인의 이슬람 문화가 한족들의 생활과 너무 달라서 중국 내에서도 한족과 마찰을 빚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피상적인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위구르인들은 무슬림 민족 중에서 매우 세속적인 편에 속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장 위구르 지역 지하 자원 개발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한족에 돌아가다시피 하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암만 이역만리의 차이여도 두 세대 정도만 거치면 충분히 동화된다. 당장에 영어를 사용하는 홍콩과 싱가폴, 그리고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 예시다. 만일 위구르인들이 힘에서 열세일 뿐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받는 떡고물이 괜찮다면 자발적으로라도 중화권에 동화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은 위구르를 식민지배 하고 있는데다, 노동착취부터 자원탈취까지 위구르에 안 좋은 것들만 다 저지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